<내용> 제당(霽堂) 배렴(裵濂) 선생이 대구 봉산정으로 보낸 일제시대 편지 피봉. 서신은 없음. <참고> 배렴(裵濂) 호는 제당(霽堂).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우다가 금릉청년학관 중학과에 다녔다.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서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1929년 18세 때 이상범에게 전통화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. 그해 10월 제9회 서화협회전에 〈만추 晩秋〉를 출품했다. 1930년 제9회 조선미술전람회(선전)에서 첫 입선한 후 선전이 끝난 1944년까지 계속 출품했다. 1935년 서화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1940년 화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. 8·15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그 산하에서 조선문화건설 중앙협의회 미술위원, 조선미술건설본부 동양화부 회원, 조선미술협의회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. 청구미술원, 조선서화동연회,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, 예술원 회원, 대한미술가협회 최고위원 등을 거쳤다. 1945~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출강했고 1965년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부임했다. 그는 남종화의 전통을 이어 적묵의 산수(山水)와 단아한 화격(畵格)을 중시하는 작품들을 남겼다. 대표작으로 〈산수도〉(1960)·〈설악영봉〉 등이 있다.